[기자의 시각] ‘순환 논법’에 빠진 기술형 입찰 개선 논의제도 운영 문제는 낮은 ‘사회적 자본’에서 비롯
1975년 도입된 ‘기술형 입찰 제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식의 순환 논법에 빠지기 쉬운 주제다. 건축물의 품질을 제고하고 건설업계의 기술경쟁력을 높인다는 장점과, 심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거래?’가 파고들 소지가 크다는 문제가 공존하는 만큼 제도의 개선이 쉽지 않다. 자칫하면 제도를 강화한다는 구실로 규정은 ‘누더기’가 되고 되레 실효성을 떨어뜨릴 우려도 있다.
지난 27일 한국건설관리학회 주최로 ‘국내·외 기술심의방법 비교 및 개선방향 포럼’이 열렸다. 일괄·대안·기술제안 등 기술형 입찰제도의 설계심의 방법을 국내외 사례와 비교해 보다 공정하고 변별력 있는 설계심의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논의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기술 변별력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와 ‘제도 개선보다는 낮은 사회적 자본의 문제(로비 개입)’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현재 전체 공공공사의 16.8% 수준인 ‘기술형 입찰’을 향후 2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기술형 입찰이 그동안 건설기술력을 발전시켰고 해외 수주 경쟁력 제고에 기여한 만큼 장점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이날 토론에서는 기술형 입찰 제도와 관련해 “사업별 맞춤형 평가항목 필요” “현행 제도가 경쟁을 위한 평가기준과는 맞지 않다” “불필요한 평가기준 과다(평가항목 축소 필요)”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기술형 입찰의 장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술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기술형 입찰은 단점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으로 기술형 입찰의 하나인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의 경우 낮은 비용에 보다 좋은 기술을 도입하고 시공 기간도 단축시킨다는 장점이 있지만 심의위원 평가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가 따르고 참여 설계사는 시공사의 설계업무를 단순 지원하는 형태로 하청 계약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이날 토론에서는 기술형 입찰 제도 운용의 문제는 국내의 낮은 ‘사회적 자본’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한 토론자는 “기술형 입찰 제도는 매년 바뀌고 너무 많이 바뀐다”며 “(그럼에도 제도 개선에 대한) 모니터링이 거의 안 되는 만큼 이런 과정들이 체계적으로 준비가 되고, (제도 개선은) 중장기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의 강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도를 담는 사회 풍토가 중요하다는 비판일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인간관계와 같은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발생돼 사람들의 상호 작용과 협력 방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개인 혹은 집단에게 이익을 주는 ‘무형의 자산’을 말한다.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경제적 거래의 안정성이 낮아 이를 확보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다. 제도와 규범이 미비한 사회일수록 ‘기회주의적 행동’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학연·지연’ 등이 영향을 발휘하는 우리나라의 풍토를 가리켜 ‘사회적 자본’이 낮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형 입찰의 경우 심의위원 평가 과정에서의 ‘불미스러운 거래?’에 학연·지연이 이용될 것이다. 이날 한 토론자는 “비리나 로비의 문제를 절차로 해결한다는 건 문제다”고 했다. ‘로비 리스크’를 피하려고 제도(기술형 입찰 규정)를 만들면 안 되고, 그럴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불미스러운 거래?’ 기회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기술형입찰 제도를 개선하면 오히려 ‘심의 기간’이 짧아져 ‘기술 변별력 제고’라는 본래의 의도를 저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건설산업’의 사회적 자본이 강화돼야 할 문제다.
/허문수 부국장 <저작권자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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