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으론 감리현장도 못 돌아… ‘하향평준화 기술자격법 개정’ 안돼”고용부,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기술사·기능장 시험 응시에 필요한 경력 요건 2~4년으로 줄여 고용부 “청년 도전 기회 확대”… 건설업계 “기술사 자질 하락”
매일건설신문=조영관 기자 | 정부가 기술사·기능장 시험 응시에 필요한 경력 요건을 2~4년씩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에 나선 가운데 건설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청년 기술인재의 응시 기회를 확대하고 산업현장 수요를 국가기술자격에 반영하기 위한다는 취지로 이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서는 “설계와 감리 등 현장 경험이 부족한 기술사를 양산하는 하향평준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일정으로 입법 예고 중이다. 정부가 이번 국가기술자격 개정에 나선 건 2010년 이후 16년 만이다. 고용부는 개정 배경에 대해 “기술사·기능장 시험 응시에 필요한 경력 요건이 과도해 역량을 갖춘 청년들의 도전 기회가 제한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기술사·기능장 시험 응시에 필요한 경력 요건은 2~4년씩 단축된다. 이를테면, 기술사·기능장 자격 취득 응시 자격이 기존 9년 경력 이상에서 7년 으로, 기능사 취득 이후에는 기존 7년 이상 경력에서 5년으로 조정되는 식이다. 기술사·기능장 경력 응시자격은 ▲학위 ▲자격 ▲경력 및 훈련으로 구분되는데, 각 항목에 경력 요건을 부여해 기술사·기능장 자격 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구조다. 현재 국가기술자격 종목은 기능사·산업기사·기사·기능장·기술사 5단계로 나뉜다.
이번 개정안은 앞서 지난달 3일 제1회 ‘국가자격 제도발전 포럼’에서 논의한 내용을 제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기술사·기능장 시험 응시에 과도한 실무경력이 요구돼 역량을 갖춘 청년들의 도전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라고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청년층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기술사·기능장 등급의 경력 응시자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게 고용부의 방침이다.
아울러 고용부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규칙’을 개정을 통해 국가기술자격에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일학습병행 자격’을 기존 7개 종목에서 16개 종목으로 확대한다. 고용부는 “일학습병행 훈련생이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이론을 배워 일학습병행 자격을 취득했음에도 동일한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시험만을 위한 공부를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감소하게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기술사·기능장 시험 응시 경력 요건 단축’에 대해 “기술 자격의 하향 평준화”라며 반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고용부 홈페이지에는 “섣불리 응시자격 경력을 단축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며 기술사의 자질을 하락시키는 요인” “선진국의 경우 가장 짧은 기간이 공학인증을 받고 최소 4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 룰을 먼저 검토한 후 재검토해야” 등의 개정 반대 댓글이 달렸다.
건설업계가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이번 정부의 개정안이 ‘현장 경험이 부족한 기술사’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사 자격을 보유한 사람이 기술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기존에는 경력 4년이 필요했지만 개정안은 이를 2년으로 줄였다. 또한 관련학과 대졸자로 기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기술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선 기존에는 6년 경력이 필요했는데 개정안은 이를 3년으로 줄였다.
이에 대해 토목구조설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보통 대학 4학년 때 기사 자격을 취득하는데, 개정안대로라면 대졸자 사원이 건설사 입사 2년 만에 기술사 시험을 보게 되는 것”이라며 “이론적인 것만 외우는 기술사가 양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술사는 프로젝트 설계와 현장 감리를 해야 하는 역할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며 “2년 경력이면 평균 3년가량 진행되는 건설 감리 현장도 다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두고 ‘기능장’과 ‘기술사’ 간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는 ‘실무 중심의 숙련된 기능인’이라는 기능장과, ‘이론 중심의 공학적인 분석능력’을 요구하는 기술사의 정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두 자격 모두 국가에서 인정하는 기술 분야의 ‘톱 클래스’로 꼽히지만 실제 현장에선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한 기술사는 본지에 “외국의 경우 공대를 나온 사람만 기술사 자격을 응시할 수 있는데, 현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로스쿨 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볼 수 있다”며 “자격을 등급화한다는 건 누구나 진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의사가 등급이 있다면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무엇보다도 이번 개정은 능력 있는 청년들이 과도한 진입장벽에 가로막히지 않고 최상위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응시자격 인정 경로를 도입하는 등 학력·경력 위주의 응시자격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국가기술자격이 청년들에게 걸림돌이 아닌 성장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사 자격 분야의 한 전문가는 본지에 “현재 젊은 사람들이 기술사자격시험을 안 보는 이유는 기술사 자격을 취득해도 아무런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며 “경력을 단축한다고 응시할지도 미지수일뿐더러, 무리하게 경력을 단축하면 이론만 달달 외운 기술사를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기술사회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영관 기자 <저작권자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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