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건설현장은 여전히 사고사망 위험이라는 심각한 현실 속에 놓여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구조적 안전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건설업은 추락, 붕괴, 끼임 등 다양한 위험 요인이 상존하는 대표적 고위험 업종으로 안전관리의 부실은 곧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다. 따라서 현장 중심의 안전문화 정착, 철저한 위험성 평가, 중소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 강화가 절실하다. 결국 건설업 사고 문제는 단순한 산업재해의 통계를 넘어 노동자의 생명과 사회적 신뢰를 지키는 핵심 과제로 자리매김한다.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사회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국회에 제출된 건설안전특별법안은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건설종사자 등 건설공사 참여자 모두에게 권한에 상응하는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려는 시도다. 그동안 시공사에 집중되었던 책임의 무게추를 분산하고 건설 프로젝트 전 과정에서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도록 유도하는 입법적 의지가 담겨 있다.
국토교통부는 건설주체별 권한에 상응하는 안전책무를 부여하고 건설사고를 감축하려는 제정안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관계 기관 및 단체에 대한 의견검토 결과와 현장적용성 등을 고려하여 일부사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인허가기관인 지방자치단체는 법안의 취지에 공감하며 인허가 기관으로서 행정적 감독 역할을 수행할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권한 확대가 아니라 인력 충원, 전문성 확보, 예산 증액이라는 현실적 부담을 동반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충분한 지원을 조건으로 한 ‘조건부 찬성’이라는 실리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공·민간 발주자는 가장 강력한 반대 주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적정 공사기간 및 비용 제공 의무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제67조와 중복된다고 주장하며 ‘과잉 규제’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민간 발주자는 안전자문사 선임 등 추가 비용이 기업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장기적으로 건설 투자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제적 셈법을 강조한다.
대한건축사협회는 가설구조물 및 안전시설물 설치 계획은 현장 상황에 따라 시공자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설계 단계에서 공사비·기간 산정 책임을 지우는 것은 건축사법상 설계 범위와 충돌하며 이는 설계자의 전문직업적 권한과 책임 경계를 침해하는 무리한 요구라는 입장이다.
감리자는 공사 중지 명령권 등 권한 강화에는 찬성하지만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규정이 감리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건설엔지니어링협회는 건설사업관리 용어 정의의 명확화와 함께 면책 조항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권한 대만큼 법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방어적 셈법을 드러낸 것이다.
대한건설협회 등 시공사는 매출액 대비 과징금(최대 3%) 부과가 평균 영업이익률(약 3%)과 맞먹어 기업 존립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종사자 시정 요청권이 원청 시공자의 실질적 사용자성을 인정하게 되어 노란봉투법과 맞물린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기업 생존과 노사 관계라는 복합적 부담을 반영한다.
전문건설사 등 하수급사는 원도급사의 안전시설물 설치 책임 명확화와 적정 공사비·기간 요청권 보장에는 찬성한다. 이는 열악한 하도급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 발생 시 공동 책임 및 행정 처분 강화에는 부담을 느끼며 찬성과 반대가 교차하는 양면적 태도를 보인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등 노동자 측은 법안의 취지에 적극 찬성한다. 발주자와 시공자에게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실질적인 안전 작업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기대를 드러낸다. 이는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근로자들의 가장 기본적 요구이자 법안을 통해 실질적 변화를 기대하는 순수한 셈법이다.
이처럼 각 주체의 셈법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법안의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존 법과의 중복 규제 및 과잉 처벌 논란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가 추가될 경우 현장의 혼란과 기업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둘째, 경제적 부담 증가 문제다. 매출액 기준 과징금과 추가 안전관리 비용 발생은 건설업계의 낮은 평균 영업이익률을 고려할 때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수 있다. 셋째, 책임 소재의 불명확성이다. 설계자와 감리자는 자신들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책임 부여에 반대하며 정부 부처 간에도 시각차가 존재한다.
건설안전특별법안은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사망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요한 시도다. 그러나 실효성을 높이고 산업계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중복 규제 해소, 경제적 부담 완화, 책임 소재 명확화라는 세 가지 과제를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형식적인 서류 작성이나 법적 소송 등에 따른 새로운 ‘밥벌이 시장’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안전이라는 대의명분과 산업계의 지속 가능한 현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지난한 줄다리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 끝에서 대한민국 건설현장이 더욱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전문가 모임 대표, 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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