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기 아닌가” 대통령 한마디에… ‘中企 젖줄 선금’ 깎는 철도기관코레일·철도공단, 발주사업서 ‘선금 의무지급률’ 원칙 적용 기조‘다원시스 납기지연’ 유탄… 李 “사기당한 것 같다” 발언도 中企 “선금 30%는 원재료값도 충당 안돼… 삭감 치명적”
매일건설신문=조영관 기자 | “대통령이 선금을 줄이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며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철도 레일 관련 부품을 제작해 발주청에 공급해온 중소기업 A사 대표는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작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발주한 50억 원 상당의 물품 제작 구매계약을 수주했지만 부품을 제작하기 위한 원재료인 레일을 확보하는 데 난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코레일이 사업비에서 최대 70%까지 지급하던 기존의 선금 규모를 최근 30% 수준으로 깎았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작년에 올해 사업계획을 세울 때 통상적으로 받았던 ‘선금 70%’를 기준으로 자금계획을 세운 것이었는데 갑자기 선금이 깎이면서 자금 융통이 막혀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호소했다.
코레일이 최근 ‘선금 지급률’을 삭감하면서 철도 중소기업들이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경영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금은 그동안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초기 사업비를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해 대기업과의 수주 경쟁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소기업 차원에선 선금이 ‘젖줄’이었던 셈이다. 국가 차원에선 선금을 적절히 사용하며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공공경쟁시장 확보를 통해 예산 절감 효과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철도 중소기업 사이에선 발주청이 ‘선금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선금 지급률 삭감 기조’는 국가철도공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철도공단은 이달 초 내부적으로 ‘선금제도 개선에 따른 관리방안 알림’ 공문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문에는 ‘선금의 지급한도는 원칙적으로 선금 의무지급률 이내’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A사 대표는 “선금을 받아서 사업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고, 선금을 못 받을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며 “중소기업은 대기업과는 달리 낮은 신용도로 인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두 철도 공공기관이 올해부터 선금 지급률을 급격하게 깎은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작년 12월 발언이 작용했다는 게 철도산업계의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작년 12월 12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철도차량 제작사인 다원시스의 납품지연 문제와 관련해 “내가 보기에는 정부 기관들이 사기당한 것 같다”며 관계자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보통 민간에서는 계약금 10% 준다. 70% 줬더니 이 사람들이 돈 받아서 딴짓하다가 결국 부도내는 경우도 상당히 있더라. 그런데 70%까지 줄 수 있다는 건 예산 조기 집행이나 이런 편의를 위해서이지 당연히 주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급금 70% 주는 규정을 바꿔라. 선급금을 최대 20% 이상 못 넘게, 특정한 경우에만 승인을 받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윤진환 국토부 철도국장은 “보통의 경우는 제작을 독려하기 위해 선금을 많이 주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 대통령의 “사기당한 것 같다”는 발언을 시발점으로 코레일과 국가철도공단이 선금 지급률을 깎는 기조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다른 철도기업의 대표는 “지금도 70% 선금을 받아서 사용을 다 증명해온 것”이라며 “대통령 말 한마디에 갑자기 제도가 바뀌니 중소기업에서는 자금계획 등이 어긋나는 것이고, 앞으로 그 차액을 어떻게 충당할지 난감한 상황이다”고 호소했다.
표면적으로는 두 기관이 선금 지급률을 깎은 것으로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선금 지금 규정’에 예외를 두지 않고 재량권을 없앤 것이다. 선금 지급은 재정경제부의 국가계약법 하위 규정인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을 따른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금액의 100분의 7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금을 지급할 수 있다. 분야별 의무지급률은 ‘공사’는 계약금액이 100억 원 이상일 경우 100분의 30, ‘물품의 제조 및 용역’은 계약금액이 10억 원 이상일 경우 100분의 30, ‘수해복구공사’는 계약금액이 20억 원 미만일 경우 100분의 70 등 사업 분야·규모별로 의무지급률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두 기관이 기존의 ‘70% 선금 지급’에서 ‘원칙 적용 기조’로 돌아섰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두 기관은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입찰 독점 구조 해소를 위해 ‘40%포인트의 선금 지급 재량권’을 발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으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적극 행정’이 ‘소극 행정’으로 탈바꿈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선금 지급률 삭감’으로 최대 피해를 볼 철도 분야는 무엇보다 ‘물품의 제조 및 용역’이 꼽힌다. 왜냐하면 시공사의 경우 사업진척도에 따라 기성금을 받고 있고, 감리나 설계사의 경우 사업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막대한 초기 자금이 필요하지 않다는 해석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물품의 제조 및 용역’의 경우 제철(레일) 원재료를 보다 원활하게 확보하기 위한 선금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철도 부품의 핵심 원자재인 ‘레일 생산’은 독점시장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A사 대표는 “철도 제품의 원자재값이 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선금을 30%로 깎은 건 중소기업에겐 치명적인 것”이라며 “10개의 제품을 만들 경우 선금 30%만 받으면, 계속 비용은 들어가는데 납품까지의 공백이 긴 것”이라고 했다. 선금과 잔금의 기간 동안 비용을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어 “선금이라는 건 조삼모사 같은 것이다. 자칫 연말에 선금을 받고 다음 해에 제품을 납품할 경우 경영 회계가 꼬일 수 있다”며 “그리고 선금을 미리 당겨쓰면 회사가 어려워질 수 있을뿐더러 선급금은 해당 프로젝트에만 사용하게 돼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차원에선 선금을 받는 시기와 절차 등 사용을 위해선 철저한 사업계획이 필요하고, 이 계획이 틀어지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취지다.
철도산업계에서는 발주청이 선금 지급을 통해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공공경쟁시장 확보에 따른 예산 절감 효과도 얻을 수 있는 만큼 ‘선금 운용의 재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계약예규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을 개정해 오는 7월 1일 시행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A사 대표는 “역설적으로 선금 지급률 삭감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곳은 코레일과 철도공단일 것”이라며 “다원시스 사례처럼 독과점 기업 때문에 발주청의 업무가 마비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철도공단 홍보팀 관계자는 본지에 “올해 현재까지 계약상대자가 청구한 공사 및 구매계약의 선금은 계약금액 대비 평균 41.7%로 개별 건에 따라 30~51%로 나타났다”며 “선금은 계약금액의 100분의 7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약상대자가 신청한 바에 따라 지급하도록 되어 있고, 공단도 해당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본지에 “물품구매의 경우 계약금액의 30%까지 의무지급을 해야 하며, 계약상대자가 선금의무지급률 이하로 신청하는 경우에는 신청한 바에 따라 지급한다”며 “계약금액의 70%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선금 지급이 가능하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조영관 기자
☞ 선금 공사를 비롯해 제조 및 용역계약에 있어 노임 및 자재구입비 등을 계약이행 전에 미리 지급해 원활한 계약 이행을 지원하는 제도다. 계약 이행 전 또는 기성대가 지급 전에 미리 대금(사업비)의 일부를 지급하는 것으로, 해당 계약의 노임·자재구입비·보험료 등에 사용된다. 계약 체결 후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계약금액의 100분의 7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금의무 지급률 이상을 청구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한다. 정부는 재정의 조기집행과 기업의 자금부담 완화 취지에서 선금급을 계약금액의 80%까지 지급하고, 선금급 지급 기간을 기존 14일 이내에서 3일 이내로 단축하는 내용의 특례를 활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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