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대한민국 초창기의 철도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115話’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3/05/27 [18:51]

[기획칼럼] 대한민국 초창기의 철도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115話’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3/05/27 [18:51]

▲  보령 경찰공원묘역                                                    © 매일건설신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미 군정기 운수부를 교통부로 개편하고 9월  7일 종전 운수부와 그 부속기관의 행정권 일체를 교통부장관이 인수하면서 한국의 철도를 관장하는 교통부 업무가 시작되고 1주일 만에 경부선 내판역에서 참사 사고가 발생하였다.

 

내판역 열차 추돌사고는 9월 14일 오후 7시 30분경 경부선 내판역에서 기관차 고장으로 정차하여 수리 중인 부산발 서울행 조선해방자호 후부를 목포발 서울행 서부해방자호가 추돌하여 후부 객차에 승차한 미군 36명과 한국인 1명이 사망하고, 미군 66명과 한국인 40명이 부상한 사고로, 당시 혼란한 사회상황에서 남로당의 계획적인 테러를 의심하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담당 검사는 물론 미군조사단에서 철도 운전규칙 무시가 원인이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들과 각급 사회단체 및 학생들이 참여하여 희생자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국민 조위회(弔慰會)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1949년 3월 5개의 운수국(서울·부산·대전·순천·안동)에 삼척운수국을 묵호에 추가 설치(1961년 안동·삼척은 영주철도국으로 통합)하여 삼척탄전지대 수송을 강화하였으며, 4월 8일 대한민국 최초로 영암선 철도건설공사를 시작한 후, 이어 5월 3일 영월선과 함백선 등 탄광의 철도 건설공사를 시작한 것은 그간 수년 동안 석탄 부족으로 열차 운행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가져온 결과로 판단되며, 탄광의 철도 건설은 한국의 산업발전과 주 연료 장작을 무연탄으로 교체하여 산림녹화에 크게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46년 운수국에 철도경찰부, 철도경찰학교 및 주요역에 철도경찰서 설치에 이어 1949년 4월 철도경찰대 설치령이 공포되었으며, 철도경찰은 역과 차내의 질서유지와 범죄예방은 물론 경북 화학산과 철마산 등의 무장 공비토벌에도 많은 공을 세웠으며, 6.25 전쟁 중 철도시설 보호를 위하여 개성전투, 장항선 주산전투 등에서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였던 철도경찰은 1953년 일반경찰에 통합되었으며, 1990년대 인근 장항선 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현충일이면 찾아가 참배했던   충남 보령의 전사 철도경찰의 합동 묘소는 2007년 경찰 공원묘역으로 조성되었다. 

 

1949년 8월 18일 새벽 서울역을 출발하여 안동으로 가던 여객열차가 오후 6시경 길이 2㎞의 단양~죽령 간 대강터널 안에서 객차 연결기 파손으로 후부 객차 3량이 분리되면서 터널 내 자욱하게 번진 석탄가스에 중독되어 승객 51명이 사망하고, 306명이 부상당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사상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시기이다 보니 경찰은 빨갱이 철도국원이 일부러 낸 사고라는 추측으로 구원작업에 여념이 없는 철도 간수를 의심하는 일도 있었다.

 

1949년 11월 5일 영월선 제천~송학 간 9.8㎞가 개통되었으며, 1949년 연말 철도수송실적은 여객 77,422,000여 명, 화물 6,421,500여 톤이었고, 1950년 3월 1일 영암선 영주~내성 간 14.1㎞가 준공되었으나 6월 25일 북괴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 손길신 전 회장은?

전철운영단장을 끝으로 철도청39년, 철도대학 초빙교수1년, 철도박물관장(2급 정 학예사) 11년을 거쳐 한국철도교통문화협회 명예회장 및 Torah Ware 경영고문으로 레일미디어 편집장을 맡고 있다.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116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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