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하도급 이중계약서, 건설 윤리는 어디갔나원청·하도급사, ‘하도급계약 적정성 심사’ 회피 자성해야
종합건설업체 A사의 대표는 요즘 공공사업과 관련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일부 공정을 전문건설업체 B사에 하도급 줬는데 B사의 대표가 은연중 공정거래위원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A사는 B사와 실제로는 70% 금액으로 하도급계약을 하면서 82% 이상의 이중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B사 대표는 A사로부터 공사비를 더 받아내기 위해 공정위를 언급하고 있고, A사 대표에게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위 내용은 기자가 현재의 건설 하도급 시장 실정을 토대로 ‘가상 상황’을 그려본 것이다. 최근 건설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하도급시장도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과거의 하도급 시장이 을에 위치에 있는 하도급사가 ‘울며겨자먹기’로 저가에 사업을 수주했다면, 현재는 하도급사가 일단 공사를 수주해놓고는 이중계약서를 빌미로 원청으로부터 추가 사업비를 받아내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과거 ‘갑질’이라는 용어가 유행했었다면, 이제는 ‘을질’의 시대가 된 셈이다.
‘건설산업기본법’ 31조는 ‘하도급계약의 적정성 심사’를 규정하고 있다. 발주자는 하수급인이 건설공사를 시공하기에 현저하게 부적당하다고 인정되거나 하도급계약금액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에 따른 금액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하수급인의 시공능력, 하도급계약내용의 적정성 등을 심사할 수 있다. 하도급계약금액이 도급금액 중 하도급부분에 상당하는 금액의 82%에 미달하는 경우다. 즉 하도급 금액이 82%에 미달할 경우 10명으로 구성된 하도급계약심사위원회로부터 하도급계약 적정성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도급 금액 82% 기준은 ‘하도급계약 적정성 심사’ 대상 공사를 가려내는 가이드라인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 하도급 시장의 ‘이중계약서’는 원청과 하도급사가 하도급계약 적정성 심사를 회피하기 위해 공모한 결과다. 원청과 하도급사의 계약은 대등한 사인 상호간의 법률관계(재산관계와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민법’의 영역으로 발주자든 국가든 개입할 수 없다는 점이 ‘이중계약서’의 토대가 된 셈이다.
82% 하도급 금액 기준에는 하도급하려는 공사 부분에 대해 수급인(하도급사)의 도급금액 산출내역서의 계약단가(직접·간접 노무비, 재료비 및 경비 포함)를 기준으로 산출한 금액에 일반관리비, 이윤 및 부가가치세가 포함된다. 즉, 하도급사의 규모와 기술력 등 경쟁력에 따라 낮은 하도급 금액이더라도 어떤 기업은 이윤을 내면서 수행할 수 있고, 다른 기업은 손해만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도급 시장에서 하도급 적정 금액이라는 것은 정할 수도 없고, 사인 간의 계약의 문제로 정부도 발주자도 개입할 수 없다. 시장(市場)만이 ‘적정 하도급 금액’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레도오션’이 된 건설 하도급 시장에서 원청과 하도급사가 정부와 발주자의 개입을 회피하기 위해 ‘이중계약서’라는 사실상의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상황은 분명 정상은 아닐 것이다. 원청과 하도급사의 ‘건설 윤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시공 수준과 능력을 바로 알고 그에 합당한 사업을 책임 수행한다는 자세가 먼저일 것이다.
/홍제진 부국장 <저작권자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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