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과 ‘수주 경쟁’한다는 공간정보산업진흥원사실상 민간 기업 수주 ‘입찰 들러리’ 나섰다는 의구심
가끔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기관명에서 볼 수 있듯 공간정보산업을 진흥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이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이 발주한 ‘국가기본도 생산관리체계 고도화’ 사업에서 특정 민간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입찰 공고 중인 이 사업은 21억원이 투입돼 240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공간정보산업진흥원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공간정보기업 D사측은 진흥원에 찾아와 진흥원이 이 사업에서 자신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D사 대표와 진흥원 원장이 만났다고 한다. 국내 공간정보산업을 진흥시킨다는 취지로 설립된 기관이 기업의 요청으로 ‘입찰 연합’을 구성해 상대 기업 컨소시엄과 ‘수주 경쟁’을 벌이기로 결정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공간정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진흥원 정관과 사업 입찰공고문 등을 검토한 결과 진흥원이 이 사업에 참여하는 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번 사업은 용역사업이지만 연구사업이라고 봤고, 일각의 우려처럼 민간침해라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했다.
진흥원의 이 같은 해명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진흥원은 D사측에서 스스로 진흥원에 입찰 참여 요청을 한 것이라면서도 해당 컨소시엄의 정확한 구성 현황과 지분율은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공공성을 최대 운영 목표로 둬야할 기관이 사익 추구에 혈안인 기업의 요청을 스스로 선뜻 받아들였다는 것부터가 믿기 어렵다. 진흥원 측은 앞서 진흥원의 컨소시엄 지분율은 미미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로 미루어볼 때 공적 성격의 기관이 민간 기업의 수주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입찰 들러리’를 섰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흥원과 입찰 컨소시엄을 구성할 경우 수주 확률이 낮아진다면 D사는 진흥원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D사와 진흥원이 국토지리정보원이 발주한 이번 사업에서 입찰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다른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누군가가 D사와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을 짝지어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진흥원은 이번 사업 참여의 정당성과 관련해 진흥원 정관 4조(사업) 13항을 제시했다. ‘공간정보체계의 구축·관리·활용 및 공간정보의 유통 등에 관한 기술의 연구·개발, 평가 및 이전과 보급’을 규정한 조항이다. 이 조항을 근거로 이번 지리원 사업은 용역사업이지만 연구개발도 된다고 해석하고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법 해석의 범위를 무한대로 늘린 것이다. 기관이 민간 침해를 막고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법 해석을 좁히면서 자기검열을 해야 할 마당에 그 범위를 아전인수격으로 확대 해석했다니 의아할 따름이다.
공간정보 산업계에서는 그동안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공간정보산업진흥법’에 의해 공간정보산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공간정보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 진흥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그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공의 성격을 갖고 있는 기관이 민간 경쟁 입찰에 참여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진흥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진흥원이 민간 경쟁 입찰에 참여하는 건 다 돈(수익) 때문인데, 진흥원이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라며 “그런데 현재 그에 대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민법 상 비영리법인으로 출범한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은 국토교통부로부터 공간정보산업지원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2015년 공간정보진흥법 상 법정기관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출범 당시 출연기관인 LX공사, 네이버, 카카오, KT의 지원이 끊기면서 사실상 국토지리정보원 등의 정부위탁사업으로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 정부 재원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해 ‘공간정보산업진흥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현재 국회 차원에서 ‘답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간정보산업을 진흥한다는 명판을 떡하니 내건 공적 성격의 기관이 특정 기업과 연합해 민간과 수익사업 수주 경쟁에 나선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관리·감독 기관인 국토부는 물론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의 자정 의지가 필요한 시기다.
/조영관 기자 <저작권자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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