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환경 당국의 ‘수돗물 흑역사’

김동훈 기자 | 기사입력 2021/03/22 [17:47]

[기자수첩] 환경 당국의 ‘수돗물 흑역사’

김동훈 기자 | 입력 : 2021/03/22 [17:47]

▲ 김동훈 기자     © 매일건설신문

물 관련 정책과 산업을 취재하다보면 지난 30년 동안의 주요 ‘수돗물 흑역사’가 떠오른다. 잘못된 실수 하나가 수돗물에 대한 국민 불신을 증폭시키고, 국가의 주요 사회안전망을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딱 30년 전의 일이다. 1991년 3월 14일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두산전자에서 30톤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돼 8시간 동안 쏟아진 페놀은 단 하루 만에 대구 취수원으로까지 흘러내려 갔다.

 

당시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대구시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해당 취수장은 별다른 원인 규명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소독을 위해 다량의 염소 소독제를 부었다. 사실 애초에 페놀은 취수사업소의 수질 검사 기준에 있지 않았기에 정확한 해결책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페놀은 만나서 안 될 염소를 만나 독성이 더욱 강해졌고, 인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로 변모했다.

 

페놀은 낙동강을 타고 하류 끝까지 계속 흘러가 밀양과 부산 등지에까지 도달, 급기야 부산 상수원에도 페놀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단 ‘8시간’의 사고가 낙동강 수계 1000만명 주민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주게 된 것이다.

 

당시 일부 지역 수돗물에서 검출된 페놀 최고 수치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보다 110배 높은 0.11ppm을 기록했다. 식수를 마실 수 없다는 불안감은 물론이고 구토·피부질환·설사 등 실질적인 아픔을 호소한 사람들이 급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오염된 수돗물을 마시고 아이를 유산한 임산부도 수백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환경처 장·차관이 동시에 옷을 벗었다.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은 구속됐고,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은 사임했다.

 

성난 여론은, 대구 주민들과 각종 환경단체는 페놀을 유출한 두산전자와 같은 그룹사라는 이유로 OB맥주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그동안 줄곧 부동의 1위를 달려왔던 OB맥주는 크라운맥주에게 자리를 내놓게 된다. 여기까지가 대한민국 역대 최악의 환경사고로 기록된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이다.

 

흑역사는 작년에도 기록됐다. 지난해 7월 인천을 시작으로 경기도, 서울, 부산 등에서도 유충이 발견됐다는 제보가 연달아 들어오면서 전국은 수돗물 공포에 떨었다. 특히 인천은 재작년 붉은 수돗물 사태를 한차례 겪은 터라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환경부는 공촌·부평 정수장의 입성활성탄 흡착지에서 유충이 유출된 것으로 최종 결론짓고, 9월 ‘수돗물 위생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생물체 유입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여러 겹의 차단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2022년까지 전국 100여개 정수장에 전체 2200억여원을 투자해 방충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런데 환경 당국의 노력과는 무색하게도 지난달 제주도 서귀포시 한 가정집에서 또다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됐다. 이 제주 강정정수장은 심지어 작년 10월에도 유충이 나왔던 곳이다. 당시 최승현 제주도 행정부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했다. 이번에 발견된 유충은 제주해군기지 진입로 공사과정에서 송수관이 파열돼 그곳으로 이물질이 유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다시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년이 끝이 아니라 올해 또 ‘수돗물 안전망’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근래 계속되는 유충 문제를 보고 있노라면 30년 전 환경 당국의 안이한 대처로 성난 수돗물 여론에 기름을 부었던 흑역사가 오버랩된다. 또다시 유충 문제가 대두된다면 수돗물에 대한 국민 여론은 다시 싸늘해지고, 이 같은 흑역사는 ‘수돗물 안전망’을 서서히 약화시킬 것이다.

 

올해는 깨끗하고 청정한 수돗물에 관한 ‘진짜 역사’를 기록할 수 있길 기대한다.

 

 

/김동훈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정책 피플
이동
메인사진
내년초 하천·댐 ‘물관리 일원화’ 완전체 형성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