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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52話’
한강철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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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2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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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철교              © 매일건설신문

 

한강철교의 시작은 1896년 3월29일 경인철도부설 허가서에서 비롯된다. 부설특약사항 제1조와 2조에서 한강에 교량을 부설하고, 교량은 보행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한쪽 또는 양쪽에 보도를 시설할 것이며, 선박의 운항을 위하여 ‘개폐부’를 설치하거나 충분히 높게 가설해야한다고 명시한 것이 한강철교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었다.

 

그 후 1898년 1월29일 뉴욕에서 발행된 Harper’s Weekly지에는 James R. Morse가 1,650feet의 한강철교를 건설할 8개의 철제 truss를 미국에서 제작하여 선박으로 운송했음을 기록하였으며, 1899년 1월30일 경인철도 부설공사를 일본에 넘길 때까지 한강철교 양끝 교대와 중간 교각 9개 중 제1,5,9번째의 3개 교각 축조까지 마친 상태였다. 공사를 인계받은 일본은 이미 축조된 3개의 교각을 다시 축조하면서 교량 한쪽 또는 양쪽에 설치하기로 했던 보도를 없애고 철도교만을 부설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이로 인해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것은 17년이 지난 1917년 10월에 개통된 제1한강교가 최초였다.) 

 

1899년 7월 한강의 홍수로 공사 중인 철교자재가 떠내려가자 대한제국 정부에 준공기한을 9월28일까지 6개월 연장 요청하여 허가받고(1899. 8.16일 구한국외교문서) 1900년 7월 5일 단선철교 1,110.25 m의 한강철교(A교)가 개통되었고, 1911년 7월 두 번째 단선철교 B교가 착공되어 1912년 9월 준공하였으며, 세 번째 단선철교 C교는 1939년 4월 착공하여 1944년 6월 개통하였다.

 

▲ 한강철교                         © 매일건설신문

 

1922년 2월27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토요일인 25일 밤부터 26일 아침까지 부산에서 올라오는 기차가 한강철교가 무너져 강으로 떨어져 수 십 명이 물에 빠져 고기뱃속에 장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소문이 번져 신문사와 역 및 경찰서로 전화가 줄을 이었으며, 25일 밤부터 26일까지 수 백 명이 전차를 타고 한강철교에 모여들게 하였는데, 26일 아침 남대문역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며, 거짓말 한자를 잡아 처벌해 달라고 했지만 마침 일요일이어서 경찰서는 두어 명의 당직자만 있어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것인데 예전에도 사회를 어지럽히는 가짜뉴스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1950년 6.25전쟁 중 미군은 1950년 7월 1일부터 적군의 남하저지를 위해 한강철교에 폭격을 시작하여 7월 3일에야 파괴되었으며, 그 후 1951년 6월12일 B교와 1952년 6월 A교를 가복구한 후 1957년 7월 C교를 복구하여 사용하며 A‧B교는 사용을 중지한 후 1969년 6월 완전 복구하였고, 1994년 12월 복선철교인 D교가 추가로 건설되었다. 

 

▶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53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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