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49話’‘6.25전쟁 이야기’ 관련 독자 질문에 대한 응답
지난 6월 22일 제47화(70년 전 6.25전쟁 이야기) 관련 독자질문이 그분만의 의문은 아니라 생각되어 오늘은 그 답을 정리하여본다.
6.25전쟁 때 김재현기관사님이 운전한 기관차가 대전역으로 돌진한 이유가 첫째 화차10량에 실린 군 보급품을 후방으로 보내야 한다는 딘 소장의 판단과 둘째 사단장 의중과 달리 참모들의 명령으로 딘 소장을 사지에서 구출하는 목적 이었다는 글을 읽었는데, 매일건설신문에서는 보급품 이야기는 아예 없을 뿐 아니라 보급품을 후방으로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딘 소장은 당시 행방불명된 사단장이었다 하여 두 글의 내용이 서로 달라 혼란스럽고, 또한 다른 책에서 그분은 1953년 교통부 발간 ‘한국교통동란기’등에 의하면 당시 증기기관차 번호는 미카3-219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했는데 신문에서는 미카3-129호라 하여 두 글의 내용이 왜 다른지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나간 역사 이야기가 조금쯤 틀린다하여 별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며, 6.25전쟁 중 대한민국을 위하여 참전한 미군을 위해 공무원(철도인은 당시 교통부공무원)이 희생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009년 철도공사 허준영사장은 철도박물관을 방문하여 김재현기관사 사연을 듣고, 박물관에 전시된 미카3-129호 증기기관차 모형의 설명내용을 보강해줄 것을 지시한 후 당시 생존해 계시던 김재현기관사 미망인을 위로차 방문 하였고, 주한미군사령관 Walter L. Sharp대장에게는 서신을 보내, 순직 62년만인 2012년 6월 미국정부 공로훈장 추서 및 유족에게는 미국방장관의 감사장을 받게 하였었다.
글 쓴 분이 참고하였다는 ‘한국교통동란기’에는 당시 대전역의 군수물자 적재차량 7량의 기록과 딘 소장 구출을 위해 대전역으로 진입한 열차(김재현기관사)의 이야기 및 김재현기관사 순직 다음날(20일) 보급품 회수와 딘 소장 구출을 위해 장시경신호원이 증기기관차를 운전하여 대전역에 재진입 후 실패하고 탈출한 이야기 등이 기록되어있어 딘 소장 구출열차(김재현기관사 운전)는 보급품과 관계없음을 알 수 있으며, 기관차 번호 3-129호를 세로쓰기 한자로 기록하여 3-219호로 읽을 수도 있으나 한자 모양을 자세히 보면 『三-一二九』임이 확인되어 의문은 풀렸으리라 생각된다.
장시경신호원의 증기기관차 운전은 1960년대 초 필자도 서울역 구내 입환 중 운전을 배워 가끔 증기기관차 조종간을 잡아본 경험이 있어 기관사 아닌 신호원이 증기기관차를 운전한 사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기관차는 최초 제작되어 출고할 때 붙여진 번호가 폐차 시까지 변경되지 않는 것이며, 필자는 대전철도차량정비창에 보존된 증기기관차 미카3-129호의 문화재 지정을 위한 심의위원으로 참여했을 당시 기관차 출고부터 폐차까지 기관차에 함께 보존되는 이력카드에서 1950년 당시 운행상항 기록을 직접 확인한바 있다.
2012년 한국철도공사 정창영사장 제안으로 증기기관차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전하여 호국철도전시장으로 조성할 때 113주년 철도의 날을 맞아 철도박물관은 현충원 후원으로 3일 동안 대전지구 유치원아 대상으로 ○옛날 기차표 배부, ○철도역사와 문화재 이야기, ○나무기차 만들기 등 “칙칙폭폭! 호국철도 체험행사”를 개최하여 많은 유치원이 참여하고자 기간 연장을 원했지만 박물관 운영상 기간연장을 못했던 아쉬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50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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