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35話」

역사 속으로 묻혀간 군산선(群山線)의 추억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19/12/24 [19:10]

[기획칼럼]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35話」

역사 속으로 묻혀간 군산선(群山線)의 추억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19/12/24 [19:10]

1899년 개항된 군산시는 호남 곡창지대 쌀을 반출할 목적으로 일찍 개발된 도시로 일본인들의 이주를 적극 권장하여 1926년12월말 시 인구 34%를 초과한 8천여 명의 일본인들이 ‘베에노쿤산(米の群山)’ 즉 ‘쌀의 군산’이라 했다.

▲ 초기 군산역  © 매일건설신문


벚꽃으로 유명한 군산~전주 간 군전도로는 1908년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설된 신작로(新作路)였고, 호남선 연계 군산선 철도부설도 1911년 6월 착공하여 1912년 3월 6일 군산~지경(1953.06.01일 대야역으로 변경)~이리(지금의 익산) 간 24.7㎞가 국영철도로 개통되었고, 1924년 6월 군산~지경 사이에 개정역과 지경~이리 간 임피역이 추가 신설되었으며, 1931년 6월 임피~이리 간에 오산 임시승강장이 설치되었다.

▲ 화차를 개조하여 만든 대용객차  © 매일건설신문


호남평야의 쌀은 군산선 열차편으로 해안까지 연장된 화물지선 군산항으로 운송되어 선박으로 일본으로 수송되던 군산에는 일제시 은행건물 등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며, 광복이후 군수품 수송을 위해 군용 비행장이 소재한 옥구까지 옥구선이 UN군에 의하여 1953년 개통되는 등 군사 목적상으로도 군산선은 주요한 노선으로 군용열차가 군산에서 대전까지 직통 운행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 중반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희망하던 당시 중립국감시위원단 중 공산국 편에 기울었던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랜드는 철수하라는 데모에 참여하는 시민과 학생들을 군산에서 옥구의 미군 비행장 앞까지 대용객차와 화차로 편성된 열차편으로 수송하였으며, 당시 중학생이던 필자도 무개화차에 승차하여 비행장 앞에 내려 “체코앤드 폴리스 게라웨이(get away)!“를 외친 기억이 있다.

 

휴전 직후 객차도 부족하여 화차에 창문을 달고 나무의자를 설치한 대용객차로 편성된 열차가 대부분이었으며 통근열차는 여학생과 남학생 칸이 따로 있었지만 옆 칸으로 이동하는 통로는 없었다. 때문에 필자는 어느 날 늦게 뛰어와 막 출발하는 열차에 승차 하고보니 여학생 칸이었으며 남학생 칸으로 옮겨 탈 수 있는 다음 역까지 견디기 어려운 부끄러움에 시달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이야기는 1977년11월11일 사망자 59명, 부상자 1,343명, 가옥 파괴로 인한 1,647세대 7,800여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이리역 화약적재 화차 폭발사고 발생시간에 바로 옆 선로에 도착했어야 했던 군산선 여객열차가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은 당시 임피역을 정시 출발한 기관사가 운전허가증인 통표를 받아오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고, 통표 분실 시 열차를 세우고 찾아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도중에서 후진하여 통표를 받아오느라 열차가 지연된 것이며, 기관사의 실수로 인한 열차 지연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방지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당시 지방철도청장에게서 전해 들었다.

 

▲ 기관사가 받아갈 통표 꽂는 모습  © 매일건설신문

10여 년 전 가천박물관 방문 중 설립자 가천문화재단 이사장님이 1940년대 여고시절 지경역에서 친구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고향이 군산선 지경역 근처였음을 알았다. 군산선은 2007년12월28일 신 장항역과 신 군산역 간의 금강을 건너는 철도연결공사가 준공되어 천안~장항 간 장항선이 천안~장항~군산~대야~익산으로 연장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장항선이 개통됨에 따라 2007년12월31일을 마지막으로 군산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 1940년대 지경역에서  © 매일건설신문

 

(P.S) 33화 중 “경성역이 1905년 서대문역으로 변경 시 영문도 ‘West-Gate Station’으로 변경되었을 텐데 라는 독자 질문에 독일인 헤르만산더가 1906년부터 한국을 방문 서대문역 근처 호텔에 머물며 참고한 열차시각표를 근거로 영문표기는 그대로 ‘Seoul Station’이었다는 대답을 드립니다.

▲ 1907년 영문 열차시각표  © 매일건설신문


 

▲ 철도교통문화협회 손길신 명예회장(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     ©매일건설신문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35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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