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8개월동안 평균해서... 1주일에 78.5시간 일했다...” 150년전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면서 인용한 영국 맨체스터 어느 공장 관리자의 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비난했다. 상품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적은 임금과 노동시간을 늘려 발생한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있다고 했다. 비판에 대해선 “제 갈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했던 단테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가졌다.
노동투쟁의 결과인지 노동생산성이 높아진 덕인지 어쨌든 세월과 함께 여러 나라에서 노동시간은 점진적으로 단축되어 왔다.
1980년대초 봄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나는 과수원 일을 거들게 되었다. 사과나무에는 붉은빛 꽃망울이 움트고 있었다. 바빠지기 시작했다. 손으로 일일이 꽃과 열매를 솎아내야 했다. 곧 이어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날까지 한 주일 멀다하고 농약을 쳐야했다. 한편으로는 사과나무 밑의 다년생 약초나 일년생 작물들을 심고 잡초도 뽑아야 했다.
많은 노동일이 이어졌다. 해가 뜨면 일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일이 끝났다. 나는 오전 10시쯤과 오후 4시쯤 간식으로 단팥빵이나 크림빵과 우유를 준비했다. 점심은 각자 가져온 도시락으로 때웠다. 하루 임금으로 남자는 4천원, 여자는 2천5백원이 주어졌다. 당시로서도 그리 크지 않은 돈이었다.
여자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학교에 갈 아이들 도시락을 미리 싸두고 먼 길을 걷거나 버스를 이용했다. 여름 날 낮이 길어진 만큼 일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일마치고 돌아간 다음에도 밤늦게까지 집안일을 챙겨야 했다. 주인이라 해서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병충해와 태풍을 피해 가까스로 사과를 수학해도 팔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판매된 사과 값은 대부분 노임과 농약 값으로 지불되었다.
상황은 그래도 차츰씩 달라져 왔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의 주 48시간 법정근로시간이 2003년부터 주 5일 근로의 40시간으로 줄었다. 추가근로 12시간과 주말근로 8시간을 포함하면 최대 68시간이다. 지난해 3월에는 최대 68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법이 공포되었다. 7월부터 먼저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경직된 급격한 노동시간 단축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느슨한 근무행태 개선도 그렇지만, 산업에 따라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집중노동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업이 외부환경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는 건설산업은 비나 눈이 내려도 덥거나 추워도 노동일을 할 수 없다. 바람이 심하거나 미세먼지가 자욱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콘크리트를 이어서 쳐야할 때에도, 비싼 장비를 임대해 긴 터널을 뚫어야 할 때에도 일을 멈출 수 없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좋은 날, 특정 공정이 있는 동안은 집중해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중소업체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전문건설업체 99% 이상이 종업원 수로 300인 이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 1월부터 50~299인, 2021년 7월부터 5~49인 사업장이 시행에 들어서게 된다. 전체 3만8천여개 업체의 70% 이상이 해당된다.
다행히 주 52시간 근로를 좀 더 현실에 맞게 운영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지난 2월 노사정은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6개월 평균 근로시간이 법정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건설업계에서 요구하는 1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이마저 아직 최종 의결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150년 전과는 노동일이 여러모로 다르다. 첨단기술이 노동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볼 수 없다. 끊임없는 글로벌 경쟁과 도사리고 있는 리스크로 자본이 탐욕으로 잉여가치를 독점할 수 있는 시장환경도 아니다.
사회는 성장해나가는 상태에서 일자리도 생기고 사람들이 행복하며 편안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는 성장동력이 지속되도록 자본의 생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 가운데 자연스레 노동과 자본이 균형을 가지려는 시도도 새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사과 꽃이 움트는 봄이 다시 찾아 왔다. 싱싱한 성장 속에 한결 건강하고 여유로워진 노동현장이 함께 하길 빈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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