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단
[기획칼럼]<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제10話
프랑스가 따낸 경성~의주간 경의철도(京義鐵道) 부설특허
매일건설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8/12/07 [16:36]   최종편집: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편집자 주(註):

본지는 철도가 지닌 특별한 역사(歷史)성 즉 이 나라가 겪은 격변의 시대를 단순히 교통 운송 수단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숨결 같은 존재이기에, 또 철도史가 잘못 알려진 보편적 오류들이 한국사 안에서도 많아, 철도교통문화협회 명예회장인 손길신 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을 통해 바로잡는 동시에 철도역사의 관심을 고 취시키고자 연속해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한국에서 철도부설권을 얻어내기 위해 세계열강들의 물밑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경인철도 부설허가는 다른 나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프랑스의 종합설비회사인 휘브릴사 (Fives Lile)는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아관파천-俄館播遷) 상황에서, 1896년 5월5일 경성~공주간 및 경성~의주간 철도부설권을 신청하였다.

 

당시 러시아는 프랑스 차관으로 시베리 아 철도를 건설 중이었으며, 이를 경의선과 연결하려는  의도가 있어 프랑스 부설권 신청을 받아들이도록 대한 정부에 압력을 가하였다.  

▲ 당시 러시아공사관(원내는 대한황족들 모습)     © 매일건설신문

 

대한정부는 일본세력의 견 제를 위해서도 이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 인 지라 신청 후 채 두 달도 안 된 7월 3일 3년 내 착공하 여 9년 내 준공하는 조건으로 경성~의주 간 경의철도 부설을 특허하였다.

 

당시 휘브릴사는 부설권 획득 후 2, 3회 노선답사를 했지만 자금조달 능력이 없어 러시아에 특허권을 전매하려 했지만 만주 쪽에 세력을 뻗칠 동청철도(東淸鐵道)와 하얼빈으로부터 여순․대련에 이르는 남만주 지선철도의 부설권을 확보한 러시아는 재정적 여력이 없어 경의철도 부설권 매입에 소극적이었다.

 

프랑스는 그냥 포기하기는 아쉬워 착공 마감일이 임박한 1899년 5월28일 일본에 인수를 제의해 보았지만 성사가 어렵다고 판단한 프랑스공사는 6월23일 대한정부가 경의철도를 부설할 경우 프랑스 기술자 채용과 프랑스자재 사용의 요구조건을 붙여 특허권을 반환하였다.

 

▲ 서북철도예전선로 1901년 한성~송도간철도부설약도  ©매일건설신문

한편 부산항~하단포간 경편철도 부설을 위하여 1898년 조선 최초의 민간철도회사(부하철도회사)를 설립한바 있는 박기종(朴琪淙)은 대한철도회사를 설립하여 1899년 7월 6일 프랑스가 반환한 경의철도 부설권을 신청하자 대한정부는 철도부설에 필요한 재력이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시 철도, 광산 등 이권사업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권옹호론(利權擁護論)에 편승하여 출원 2일 만에 5년 내 착공하여 15년 내에 개통시켜야한다는 조건으로 승인한 후 궁내부에서 직영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협궤철도로 부설할 계획을 세우고 1900년 9월 궁내부 내장원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여 초대 총재에 조병식을 임명 하였다가 황실의 재정을 총괄하는 내장원경 이용익(李容翊)에게 총재를 겸임토록 하였다.

 

한편 일본이 협궤철도 부설계획에 대하여 모든 철도궤간을 표준궤간으로 정했으면서 경의철도를 협궤로 부설함은 불가하다는 이의를 제기했던 것은 1901년10월 4일 일본 고무라(小村)외상이 주한공사 하야시곤스케(林勸助)에게 “경의철도는 경부철도와 접속하여 아시아대륙의 간선철도가 되어야 하므로 일본이 장악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라”고 한 지령과 달리 경부선과 경의선 연결이 불가하여 대륙진출의 야심에 걸림돌이 될 것에 대한 반응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 지령에 따라 하야시공사는 경의철도의 한일 합동사업 추진 제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시 건설자금 공급을 제안했지만 대한정부는 거절했고, 서북철도국은 프랑스 요구에 따라 프랑스 공사관의 서기관 ‘라훼블’을 감독으로 임명하고,

 

‘라페리엘’, ‘브로다라이’ 등 프랑스인 기사 2명을 채용하여 경성~송도(개성)간 선로 측량에 착수하고, 1902년 3월 인부 200명을 채용하여 마포에서 토목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902. 5. 9일자 황성신문은 5월 8일 이용익총재가 내외귀빈을 초대하여 서대문밖 독립관(옛 모화관)에서 기공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음을 보도하였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11話」에서도 이어집니다. 

 

ⓒ 매일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기획칼럼]<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제10話 관련기사목록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