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을 벌하지 말고, 안전에 베팅하게 하라

원청과 하청, 같은 잣대가 만드는 역설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6/08/27 [16:33]

[기고] 안전을 벌하지 말고, 안전에 베팅하게 하라

원청과 하청, 같은 잣대가 만드는 역설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6/08/2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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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기 교수    ©매일건설신문

 

건설업이 흔들리고 있다. 2026년 6월 건설수주는 전년 동월 대비 21.7% 감소했고 민간수주는 41.5% 급감했다. 건설업 취업자 수도 3.4%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건설공사비지수는 오히려 5.5% 올랐다. 일감은 줄고 고용은 감소하는데 비용은 늘어나는 구조 속에서 건설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 같은 안전·노동 규제가 죽어가는 산업의 등에 돌멩이를 얹는다고 호소한다.

 

그렇다고 안전을 미룰 수는 없다. 산업이 무너지면 안전도 지킬 수 없다는 말과 안전을 미루면 사람이 죽는다는 말은 둘 다 맞다. 문제는 이 둘을 놓고 하나를 택하라는 이분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강도를 낮추는 후퇴가 아니라 안전을 지키는 비용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창의적 접근이다.

 

첫째, 원청과 영세 하청업체에 규모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차등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과 안전 규제는 계약구조상 최상위에 있는 원청과 실제 위험이 집중되는 현장을 담당하는 영세 하도급업체에 사실상 동일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와 처벌 강도를 요구한다. 문제는 두 주체가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대규모 원청은 그나마 자체 안전관리 조직과 예산, 법무 인력을 갖추고 있지만 영세업체는 안전관리자 한 명을 상시 고용하는 것조차 버거운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동일한 잣대는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낳는다. 준수 능력이 없는 곳에 가장 큰 충격이 가해지고 정작 여력이 있는 원청에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실질적 부담만 남는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역설을 바로잡으려면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책임의 배분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원청에는 현재 수준의 안전관리 기준을 유지하거나 하도급 현장에 대한 감독·지원 책임을 오히려 강화하고 영세 하청업체에는 안전인력 인건비 보조,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지원, 공동 안전점검 서비스 같은 실질적 지원을 병행하는 단계적 설계가 합리적이다. 이때 핵심은 하청업체의 책임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원청이 하청의 안전 역량 구축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도록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위험이 가장 큰 현장에 안전관리가 가장 취약하게 남는 역설은 바로 이 지점을 손보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둘째, 처벌 일변도에서 벗어나 투자 유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안전 규제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을 묻는 사후적·결과 중심 구조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처벌 가능성만으로는 기업이 정확히 어디에 얼마를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호를 주지 못한다. 반면 투자 유인 구조는 사전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이익이 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구체적으로는 안전설비·스마트 안전장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지금보다 확대해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또한 산재보험료 산정 방식을 사고율 중심에서 사전 안전투자 실적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고가 나야 보험료가 오르는 사후 반영 구조이지만 안전보건관리체계 인증이나 예방 투자 실적을 반영해 보험료를 사전에 할인해주면 기업 입장에서 안전 투자와 비용 절감이 즉각 연결된다. 이는 독일 등 산재보험 선진국에서 이미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 외에도 공공발주 입찰에서 안전 우수기업에 가점을 부여해 안전 투자가 단순 비용이 아니라 수주 경쟁력으로 직결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기업이 안전에 투자할 때마다 그 대가가 세금, 보험료, 수주 기회라는 형태로 눈에 보이게 돌아온다는 데 있다. 사고가 난 뒤에야 책임을 묻는 구조에서는 기업이 위험을 관리하기보다 회피하는 쪽을 택하기 쉽다. 반면 투자 유인이 명확할 때는 안전 투자 자체가 합리적 선택이 되고 처벌은 그 유인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예외적 상황에 대한 최후 수단으로 남을 수 있다.

 

셋째, 형사책임 제도에 예방 노력을 반영하는 명확한 장치가 필요하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했는지를 양형 판단에서 고려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어느 수준의 이행을 갖추면 어느 정도까지 형이 감경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모호하다. 그 결과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리 사전에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고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도 사고가 발생하면 결과적으로 동일한 형사책임 위험에 노출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쉽다. 이런 인식은 어차피 사고 나면 소용없다는 체념으로 이어져 역설적으로 사전 예방 투자의 유인을 떨어뜨린다.

 

이를 보완하려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 하나는 외부기관의 인증을 받은 안전보건관리체계, 정기적인 위험성평가 실시 기록, 개선 조치 이행 이력처럼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예방 노력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요건이 충족된 것으로 확인될 경우 검찰의 기소 단계에서부터 그 사실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하고 재판 단계에서도 양형기준에 명확한 감경 폭을 규정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노력을 참작할 수 있다는 선언적 조항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갖추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가 기업 스스로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예방 투자가 단지 도덕적 노력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법적 리스크를 낮추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기업의 관심이 사고 이후의 책임 회피 전략에서 사고 이전의 예방 투자로 옮겨갈 수 있다.

 

넷째, 스마트 건설안전 기술을 활용해 안전관리 비용 자체를 낮추는 길이 있다. 사고 위험이 큰 작업에는 위치·기울기·낙하 감지 센서가 부착된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시켜 작업자의 이상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제실에 전송할 수 있다. 접근이 어렵거나 육안 점검이 위험한 대형 구조물이나 타워크레인, 비계 등은 드론을 활용한 정기 점검으로 대체하면 인력이 직접 위험 구간에 진입하지 않고도 균열, 변형, 결속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는 CCTV와 연동된 인공지능 영상분석 시스템을 설치해 위험구역 무단 진입, 안전모·안전대 미착용, 중장비 근접 등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즉시 경고하는 체계도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다. 

 

이런 스마트 안전기술은 초기 도입비만 넘어서면 상시 안전관리 인력을 여러 명 배치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24시간 감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런 기술이 아직 법정 안전관리 의무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명확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을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자 배치 의무나 안전점검 의무의 대체·보완 수단으로 공식 인정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도입 비용에 대한 보조금을 지금보다 확대해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로 성격이 바뀔 수 있다.

 

이 네 가지 방향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안전의 수준을 낮추지 않으면서 그 비용을 누가 언제 어떻게 부담하느냐의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처벌의 강도만으로 기업의 행동을 바꾸려는 정책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위험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고용이 줄어드는 현상은 기업이 위험을 관리하는 대신 회피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반대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유예하는 것은 애초에 이런 법이 필요했던 이유, 즉 반복되는 산업재해 사망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기업은 선의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숫자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어떤 규제 앞에서도 기업의 계산법은 같다. 기대수익보다 위험과 비용이 크면 그 일을 하지 않고 반대로 위험과 비용보다 기대수익이 크면 기꺼이 그 일을 한다. 지금까지의 안전 규제는 주로 전자, 즉 위험과 비용 쪽에 처벌이라는 무게를 얹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기업의 반응도 정직했다. 위험한 업무 자체를 줄이거나 외주로 넘기거나 아예 그 사업에서 손을 떼는 쪽을 택한 것이다.

 

방향을 바꾸면 답이 보인다. 세액공제, 산재보험료 할인, 입찰 가점, 양형 감경, 기술 보조금처럼 안전에 투자할 때 돌아오는 기대수익 쪽의 크기를 키우면 기업은 같은 계산법으로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다. "이걸 왜 안 함?" 안전에 투자하는 것이 세금을 아끼고 보험료를 낮추고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법적 리스크까지 줄이는 길이라면 기업은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스스로 안전에 투자하게 된다. 안전 정책의 목표는 기업을 겁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계산기 위에서 안전이 이기는 선택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규제를 늘리거나 줄이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세제와 보험, 공동 인프라와 기술, 표준화된 제도를 조합해 위험을 없애는 것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싸다는 계산이 기업 안에서 저절로 성립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건설경기가 어려울수록 안전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이 더 절실하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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