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주자도 도급인 책임” 대법 판결, 누구에게 이득일까?

‘시공 주도해 총괄·관리, 발주자 아닌 도급인 판결’의 의미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4/11/28 [14:47]

[기고] “발주자도 도급인 책임” 대법 판결, 누구에게 이득일까?

‘시공 주도해 총괄·관리, 발주자 아닌 도급인 판결’의 의미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4/11/28 [14:47]

▲ 최명기 교수   © 매일건설신문

 

건설공사 시공 자격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건설공사 발주자가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이면 도급인으로 본다는 대법원 판결이 최근 나왔다.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 형사책임을 져야 하는 ‘도급인’과 ‘건설공사 발주자’의 구분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사실 그동안 발주자는 책임은 전혀 지지 않으면서 막강한 갑의 권리만 행사해 왔다는 현장의 비판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빈번히 무산되어 왔다. 발주자들은 이제부터라도 건설공사 안전관리를 비롯한 품질관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말하는 도급인이란 그 명칭에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 건설, 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인 도급을 하는 사업주이다. 반면에 건설공사 발주자는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 관리하지 아니하는 자이다.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 관리하는 판단기준은 일반적으로 필수 불가결성, 상시성 또는 조직 편성 여부, 예측가능성 3가지를 기준으로 한다. 필수불가결성과 관련하여 당해 건설공사가 사업의 운영에 유지 또는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인 경우에는 도급인으로 본다. 상시성 또는 조직 편성 여부와 관련해서는 당해공사가 상시적으로 발생하는지 또는 당해 건설공사를 관리하기 위한 부서 등 조직이 갖추어져 있는지에 따라 도급인으로 본다. 비상시적이거나 조직이 부재한 경우에는 건설공사 발주자로 본다. 예측가능성과 관련해서는 당해 건설공사에 관하여 직접 주관하며 예측가능한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도급인으로 반면에 직접 주관하지 않아 업무에 관하여 예측이 불가한 경우에는 발주자로 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은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만약 이를 위반해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반면 건설공사를 도급했더라도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않는 건설공사 발주자는 산재 예방 조치 의무를 부담하고는 있지만 이를 위반하더라도 과태료 부과 대상일 뿐이었다.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사업의 핵심 시설에 대한 유지 보수성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경우에는 해당 건설공사를 직접 실행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해당 시설과 장비,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주체로서 산재 유해·위험 요소에 대해서도 지배·관리할 권한이 있다면 규범적 관점에서 도급인으로 보아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발주자가 건설공사 시공 자격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이면 도급인이라고 판단했다. 판단 근거로서 항만 핵심시설인 갑문의 유지관리는 공기업의 주된 설립 목적 중 하나로서 공기업이 직접 보수공사 전 과정을 기획하고 설계도면을 직접 작성했기 때문에 건설공사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으로 보았다. 또한 철강구조물공사업 등록을 하지는 않았지만 갑문시설 유지보수를 주 업무로 하는 전담부서를 두고 있었고, 공기업은 거대한 조직이지만 시공사는 자본금 10억 원, 상시 근로자 약 10명에 불과한 소규모 기업이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외에도 위험성 평가표에 사고 발생 전부터 중량물 취급 관련 사고 위험이 지적된 점 등이 판단근거가 됐다.

 

국내 주택, 공항, 항만, 도로, 교량, 철도, 발전 등 사회 간접자본의 운영주체인 공기업들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유지·보수 건설공사에서는 전문성과 시공 능력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인정받았던 건설공사 발주자 지위가 아닌 도급인으로 볼 가능성이 높아져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공사 발주자의 지위를 상실한 공기업들은 이 판결에 따라 신규공사와 유지보수 공사로 구분하여 대응 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신규공사는 실질적으로 지배, 관리, 운영하지 않는다면 건설공사 발주자로서 지위를 그대로 누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발주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건설공사 발주자로서 산업재해 예방조치 등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안전활동 수준평가 결과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점이다. 이에 따라 전면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건설사업관리기술인이나 감리원들에게 지금보다도 더 철저한 안전관리를 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대부분 발주자들은 안전감리를 지금보다 더 많이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 그동안 건설공사 발주자들은 안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줄이는 데 일정부분 기여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발주자들의 안전에 대한 관심은 실질적 지배, 운영, 관리로 볼 수가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부 발주자들은 안전감리를 앞에 내세우고 발주자들은 오히려 뒤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건설현장에서 사고는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유지보수 공사의 경우에는 건설공사 발주자들이 도급인으로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주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안전관리를 챙길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크지 않는 시공사 입장에서는 위험성평가 등 많은 서류 작성 작업과 발주자 보고, 안전점검 증가에 따른 과도한 업무 증가가 예상된다. 또한 발주자들은 사고감소를 위해 안전감리를 현장에 상주시켜 안전관리를 할 가능성도 높다. 이에 따라 안전감리에 대한 대가 수준과 역량강화의 문제도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발주자는 이제부터 도급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아무리 가벼운 사고가 발생하면 시공사로 하여금 반드시 보고토록 할 것이다. 또한 현장의 불안전한 요소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작업에 대해서는 작업중지도 시킬 것이다. 사고 원인에 대한 규명이 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한 이후에야 작업도 재개시킬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안전관리와 관련해서는 도급인의 월권을 강력하게 행사할 것이다.

 

안전강화 측면에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시공사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대법원판결 이후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라도 형식적인 안전관리보다는 실질적인 안전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시공사들은 이런 요인을 고려하여 공기와 공사비를 산출하고 입찰에 참가할 필요가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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