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건설산업의 따끈따끈한 오비, 식어버린 오비

발주청·기업 간 선후배 관계, 건설 수주 전쟁에도 영향

윤경찬 기자 | 기사입력 2023/03/14 [11:30]

[데스크칼럼] 건설산업의 따끈따끈한 오비, 식어버린 오비

발주청·기업 간 선후배 관계, 건설 수주 전쟁에도 영향

윤경찬 기자 | 입력 : 2023/03/14 [11:30]

▲ 윤경찬 편집국장   © 매일건설신문

 

지난 2012년 개봉한 한국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전직 세관원이었던 최익현(최민식 역)은 술집에서 상사였던 조 계장(김종구 역)를 우연히 만난다. 현직 시절 동료들과 함께 저지른 비리와 관련해 조 계장의 계략으로 총대를 메고 퇴직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범죄의 세계’에 막 진입하려던 참이다. 감정이 잔뜩 상해있던 찰나에 조 계장과 우연히 맞닥뜨렸고 그를 도발한 끝에 폭행까지 이르게 된다. 

 

최익현과 조 계장의 물리적인 선후배 관계는 최익현의 ‘비자발적인 퇴직’으로 이미 끝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 직장 상관과의 ‘인간적인 관계 근절’은 물론 ‘서열 정리’까지 일거에 나선다. 그가 이 때 조 계장을 폭행하면서 하는 말은 그래서 더 명료한 것이다. “내가 니 쫄따구가, 쫄따구냐고.”

 

이런 극단적인 ‘선후배 관계’는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기본 사상에는 아직까지는 사람과의 관계와 도덕적 덕목을 중시하는 ‘유교’가 밑바탕이 되고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장유유서를 굳이 사회 구조에 비유하면 연공서열쯤 될 것이고, 그 대표적인 사례는 직장의 ‘호봉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근속 연수에 따라 직급과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로, 인사관리에서 근속 연수가 긴 ‘고참 근로자’를 근속 연수가 짧은 사람보다 유리하게 대우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8년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연공서열제를 폐지하고 연봉제를 바탕으로 한 성과급제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도 호봉제는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에서의 ‘선후배’ 관계는 공고할 수밖에 없고, 평가받는 위치에 있는 후배가 자신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선배의 눈치를 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건설 산업에서도 ‘선후배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이해되는 구석이 많다. 결국 기업의 목표는 수익창출이고, 기업들에게 있어 사업 수주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런데 ‘수주 결과’를 두고 발주청과 기업 간 얽혀있는 ‘선후배 관계 지도’를 유심히 그리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 배경에는 무엇보다 ‘따끈따끈한 OB(Old Boy·선배)’와 ‘식어버린 OB’가 핵심인 것 같다.

 

‘따끈따끈한 OB’는 발주 위치에 있는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퇴직한 지 1년 남짓 된 임원을 말한다. 그만큼 퇴직 후 둥지를 튼 건설업체(시공사 및 설계사)에서 입찰 담당 임원으로서 기업이 수주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퇴직한 지 얼마 안 되는 만큼 현직 시 부하 직원이었던 후배들도 현직에 많고, 기술형입찰 내부 위원 심의나 사업 발주 정보 등의 측면에서 그만큼 후배들에게 입김?이 먹힌다는 의미일 것 같다. ‘식어버린 OB’는 발주청 퇴직 후 5년가량이 된 임원이다. 이런 임원들은 같이 근무했던 현직 발주청 후배들과의 접점도 적고 그만큼 후배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그래서 건설업체들은 ‘뜨거운 OB’ 영입을 위해 사활을 건다. 

 

최근 모 건설사업 기술형입찰 평가에서 발주청 퇴직 후 1년 남짓 된 ‘뜨거운 OB’를 내세운 설계사가 수주를 장담하다 떨어지는 이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사업 실패 배경엔 이 임원이 현직에 있을 때 후배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는 후문이다. 이런 걸 보면 기업의 수주 영향을 미치는 데 ‘뜨거운 OB’와 ‘식어버린 OB’의 차이는 크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발주청 후배들은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선배들을 보면서 최익현이 조 계장에 했던 말을 내심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경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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