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 내리는 풍경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럴까? 변변한 우산이나 비옷이 없던 촌동네라 등하굣길에 비가 내리면 쫄딱 맞는 게 일상이었고, 신작로에 고인 빗물 웅덩이를 일부러 첨벙되던 추억이 각인되어선지 모르겠다.
여하튼 지금도 비가 내리려 하면 괜히 설렌다. 특히 밤에 비가 이웃집 징크 지붕을 때리는 경쾌한 소리는 심포니처럼 들린다. 그래서 밤에 비가 내리면 창문을 살짝 열어둔다. 좀 더 리얼한 빗소리를 즐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빗소리를 오래 들어본 기억은 별로 없다. 곧바로 자장가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천둥 번개소리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천둥 번개가 칠 때면, 친구들은 잔뜩 ‘쫄아’ 있어도 나는 과감하게 논두렁 밭두렁을 내달렸다. 천둥 번개 후 쏟아지는 장대비가 얼굴을 때리는 게 너무 신났다. 요즘도 천둥 번개가 치면 여지없이 옥상 베란다로 나선다. 아니, 자전거를 몰고 천변 자전거 길을 내달리기도 한다.
이렇게 좋아하던 비가 짜증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건축주-CM으로 상가주택을 짓던 해였다. 살던 아파트가 팔려 새집에 입주할 시간은 정해졌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로 작업은 수시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애가 타서 비를 원망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건설은 비와 애증관계이다. 비가 내려 쉴 때면 좋기도 하지만, 외부작업이 중단되고 사고위험이 높아져 여간 신경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건설현장이 초긴장 상태다. 자칫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경영자까지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시공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지만, 건설선진국에 비해 처벌이 과한 측면이 있고, 자칫 건설을 위축시킬 소지도 다분하다.
법률가들에게는 호재일 것이다. 처벌이 과할수록 수임되는 사건이 많아질 테니까. 그러나 법률가를 제외하면 이득 볼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현장작업자에게도 좋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현장작업자들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듯싶다. 과도한 안전장비와 지루한 안전교육으로 오히려 신체리듬이 깨지고 작업능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업자들이 로봇처럼 프로그램화 되어 있어 교육받은 대로 정확히 움직여 주면 좋겠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다. 장비 착용이 귀찮아 관리자가 돌아서면 곧바로 장비를 풀어버리거나, 위험스러운 작업행동을 하지 말라고 사정사정해도, 시간상 아니면 편의상 위험한 행동을 수시로 벌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현장작업자들에게 시간은 돈이다. 때문에 법이 의도한 대로 현장작업자들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런 경우까지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요즘 공기(工期 ) 지연 분석 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한 과도한 안전점검과 교육 때문에 작업이 방해받는다는 볼멘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어느 공기업에서 한 달에 0.5일 정도의 공기 연장을 감안해 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0.5일은 너무 적어 보인다.
내가 비를 좋아하고 빗속에 뛰어드는 것을 다들 의아해 한다. 너무 위험한 행동이라고. 그런데 내겐 너무나 익숙한 행복이다. 누군가 내 머리 위에 우산을 고정시키고, 비옷을 벗지 못하도록 몸에 묶어둔다면 아마 미쳐버릴지 모른다. 내가 비를 맞든 말든 온전히 내 책임이다.
이런 논리가 현장작업자들에게도 적용될지 모르겠다. 현장작업은 우선적으로 현장작업자 책임 하에 이루어진다. 현장작업자의 책임범위를 과도하게 넘어서는 규제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현장작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안전해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정관리를 아무리 외쳐도 현장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듯이 말이다.
김선규 강원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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