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90話’

여기는 한국입니다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2/05/09 [16:34]

[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90話’

여기는 한국입니다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2/05/09 [16:34]

▲ 초창기부터 시대별 명판                          © 매일건설신문

 

「춘포역은 1914년 업무 시작할 때 역이 소재한 마을 이름을 따 오오바역(大場驛 : おおばえき)이었고, 해방 후에는 한국 한자음 대장역으로 불렸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유명 일간지에까지 인용되고 있어 마치 일본인들의 신문 기사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며, 1990년대 ‘대장역’이었을 때 역장, 조역(부역장) 등 전 직원의 기념사진을 ‘일제강점기 때의 춘포역’으로 소개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이 논리대로면 최초 서울역이었던 경성(京城)역은 본래 게이죠에끼(けいじぉうえき) 이었고, 대전(大田)역은 오오타에끼(おおたえき)이었다가 해방 후 경성역, 대전역으로 불렸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인데, 물론 일본인은 당연히 한자를 일본식으로 읽으니 맞는 말이지만 여기는 일본이 아니고 한국이다. 사진에서 역사에 부착된 명판이 초창기에는 ‘大場’으로, 해방 후에는 ‘대장-大場-TAE JANG’에 이어 ‘대장-DAEJANG’으로, 역명이 변경된 후에는 ‘춘포-CHUNPO’로 표기하였음을 볼 수 있다.

 

전라선은 본래 일본 미쓰비시(三菱)회사가 1912년 농산물 반출을 위한 전주~이리 간 수압궤도(인차철도) 부설 허가 요청이 반려되자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증기기관차가 끄는 협궤철도(궤간 762㎜) 부설 허가를 신청하여 1913년 1월 15일 승인받아 1914년 11월 17일 개통된 사설철도로 1927년 국유철도로 매수되어 선로 명칭을 경전북부선으로 변경하고 궤간 1,435㎜의 표준궤 철도로 개수하여 「전주(全州 ぜんしう)-덕진(德津 とくしん)-동산(東山 とくざん)-삼례(三禮 さんれい)-대장(大場 おほば)-구이리(舊裡里 きうりり)-이리(裡里 りり) 간 1929년 9월 20일부터 업무 개시」고시 318호가 게재된 관보에 기록된 일본어도 ‘おおば(오오바)’가 아닌 ‘おほば(오호바)’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장역의 명칭과 대장역 소재지인 대장촌리의 이름을 일제의 잔재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일제 이전 조선왕조 시대 이미 전라북도 전주군 남일면에 대장촌리(大場村里)가 있었으며, 이곳에는 바다와 연결된 만경강의 포구가 있어 시장이 형성되어 큰 장터라는 의미로 ‘대장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며, 이곳 드넓은 만경 평야에 신설된 역 명칭도 지역명에 따라 대장역‘이라 하였고, 1950년대 대장~이리(익산) 간 기차 통학을 하던 친구들은 대장역 보다는 대장촌역이라고 호칭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대장촌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익산면에 통합된 후, 1917년 춘포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96년 1월 대장촌리의 지명이 춘포리(春浦里)로 변경됨에 따라 대장역도 1996년 6월 1일 춘포역으로 변경된 것이다.

 

1996년 6월 역장 없이 직원만 배치된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변경된 후 2004년 직원도 배치되지 않은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으며, 2007년 6월부터 여객 취급이 중지된 후 2011년 전라선 복선 전철화에 따라 폐역되었으나, 이 역은 1914년 건축되어 한국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驛舍)로 2005년 11월 11일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등록된 문화유산이다.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91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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