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83話’

열차번호와 철도기점(鐵道起點)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2/01/03 [08:59]

[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83話’

열차번호와 철도기점(鐵道起點)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2/01/03 [08:59]

▲ 철도기점 표지석                      © 매일건설신문

 

열차는 여객열차, 군용열차, 화물열차 등 열차의 종별과 KTX, ITX, 무궁화호 열차처럼 속도에 따라 분류하는 등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데, 모든 열차에는 독특한 번호가 주어져 있다. 1954년 가수 남인수가 부른 대중가요 “이별의 부산정거장” 가사 중에 ‘서울 가는 십이 열차’라는 구절은 당시 부산역 아침 7시(07:00) 출발하여 서울역에 저녁 9시 30분(21:30)에 도착했던 ‘부산발 서울행 제12 열차’를 가리키는 열차의 번호였다.

 

1899년 9월 18일 최초 경인선 열차는 번호 없이 방향에 따라 인천행은 서행 열차, 노량진행은 동행 열차로 구분하였으며, 1901년 3월 16일 황성신문 열차 시각 개정 광고에 의하면 이때는 경성(서울)행을 상행열차, 인천행을 하행열차로 표시하였고, 1906년 4월 16일 개정된 열차 시각표에서는 경인선 인천발 서대문 착 열차는 501, 503, 505, 507, 509, 511, 513 열차로, 서대문발 인천 착 열차는 500, 502, 504, 506, 508, 510, 512 열차로 번호가 표기되었으며, 경부선은 대전, 대구, 부산발 열차는 1, 21, 3, 5, 99, 7, 9 열차로, 대구, 대전, 서대문발 열차는 2, 4, 6, 100, 8, 20, 10 열차로 번호가 표기되었다.

 

1910년 12월 28일 관보에 발표된 열차 시각표에 의하면 남대문~신의주 간 모든 열차의 번호는 21, 23, 25, 27, 29와 당시 대한제국인의 호감을 얻기 위해 대한제국 연호 ‘융희(隆熙)’를 열차명으로 채택하여 1908년 4월부터 운행을 시작했던 급행열차는 번호 없이 ‘급(急) 융(隆)’호, 신의주~남대문 간 열차는 20, 22, 24, 26, 28 및 번호 없이 ‘급(急) 희(熙)’호로 표기하였으며, 인천~서대문 간, 황주~겸이포 간, 평양~진남포 간, 삼랑진~마산 간, 부산~구포 간, 영등포~서대문 간 모든 열차의 번호가 경성을 벗어나는 열차번호는 모두 홀수, 경성을 향하는 열차번호는 모두 짝수가 사용되어, 이후 방향과 관계없이 서울에서 멀어지는 열차는 하행열차라 하고, 번호는 홀수, 서울 쪽으로 가까워지는 열차 역시 방향과 관계없이 상행열차라 하며, 짝수 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이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도로의 경우 광화문에 있는 ‘도로원표’나 목포에 있는 ‘국도 1, 2호선의 기점(起點)’ 등과 같이 도로의 기점처럼 우리나라 철도의 기점은 현재 서울역 1, 2번 승강장에 그림과 같은 철도 기점 표지석이 있으며, 앞에는 이 기점을 중심으로 목포, 인천, 평양, 신의주, 나진, 강릉, 대전, 부산역까지의 거리(㎞)가 표기되어 있다.

 

최초의 ‘철도 기점’ 표지석은 1972년 2월 15일 옛 경인선 선로 시발 지점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수도권 전철의 개통 등으로 선로가 변경되면서 철거된 후 현재의 위치에 새로 제작하여 설치한 것이다.

 

현재 철도박물관에 설치되어 있는 철도 기점 표지석은 경인선 시발점에서 철거된 것으로 필자 철도박물관 근무 중이었던 2006년 10월 철도박물관으로 옮겨 설치한 것이며, 이전하게 된 사연을 기록한 안내판을 설치했으나 일부 관람객은 이를 미처 확인치 못하고 “왜? 여기가 철도의 기점인지”를 묻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84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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