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노동이사제’ 공공기관 도입, 재고해야 한다

기관장, 노조 대변인이자 허수아비로 전락할 것

윤경찬 기자 | 기사입력 2021/12/16 [10:43]

[데스크 칼럼] ‘노동이사제’ 공공기관 도입, 재고해야 한다

기관장, 노조 대변인이자 허수아비로 전락할 것

윤경찬 기자 | 입력 : 2021/12/16 [10:43]

▲ 윤경찬 편집국장     ©매일건설신문

 “기관장이 부임하면 노조위원장에게 인사하러 다니기 바쁩니다.”

 

인사철 각 기관의 취재현장을 다니다 보면 이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임기를 ‘조용하고 무탈하게’ 보내고 싶은 신임 기관장이 근로자 대표에게 잘 보이려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각 부처에 ‘자기 사람 심기’가 시작되고, 정부 결정에 좌지우지되는 산하 기관에는 ‘낙하산 인사’가 내려온다. 이런 신임 기관장들에게 ‘개혁’을 기대하는 건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여당과 노동계는 기획재정부에 쏠려 있는 공공기관 운영 권한을 분산시키고, 방만 경영에 대한 감시와 공공성 강화를 위해 노동이사제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경영계 단체는 기업의 이사회가 노사 교섭과 갈등의 현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반대하고 있다. 한국의 노사관계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주로 시행되고 있는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의결권을 갖고 이사회에 참여하는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서울시가 산하 13개 기관에 근로자 이사를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하며 도입됐다. 기관 운영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근로자의 입김이 세지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근로자가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니 얼마나 민주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 공공기관들의 운영실태를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중장기 재무 관리 대상인 공공기관 40곳 중 19곳은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할 정도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계가 우려하는 것은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가뜩이나 방만한 공공기관의 운영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극한 노사 대립 상황에서 경영이 어려우니 허리띠를 동여매자는 기관장의 결정에 순순히 따를 노조가 어디 있겠나. 

 

특히 공공기관 노조들은 새 기관장이 부임할 때마다 ‘길들이기 요량’으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기 일쑤였다. 이에 신임 기관장은 ‘무탈한 임기’를 위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까지 도입되면 노동조합이 사실상 기관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기관이든 개혁은 어렵고 가기 힘든 길이다. 지금도 기관장들이 노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까지 도입된다면 기관장은 사실상 노조의 대변인이자 허수아비로 전락할 것이다. 두 대선 후보는 노동이사제에 대한 찬성 입장을 재고해야 한다. 

 

 

/윤경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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