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60話’

장관 재임 50일로 단축시킨 해방자호 추돌사고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1/01/25 [08:07]

[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60話’

장관 재임 50일로 단축시킨 해방자호 추돌사고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1/01/25 [08:07]

 

▲ 조선해방자호(왼쪽)와 서부해방자호                 © 매일건설신문

 

지난 59화 내용 중 초대 교통부장관 재직 기간은 50일이었지만 정부수립 이전 미 군정기간인 1947년 2월 당시 철도의 CEO라 할 수 있는 운수부장에 취임하였으니 실질적인 철도 CEO업무는 이미 1년6개월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대한민국 수립 후 초대장관이 50일 만에 경질된 사연을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 필자가 조사한 당시의 자료를 간략히 소개한다.   

 

1948년 8월25일 및 9월 3일자 남조선민보에 의하면 8월23일 국회 제47차 본회의에서 임문환 상공차관, 유진오 법제처장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거론되었으나 9월 1일 국회 제54차 본회의에서 명확한 친일 반민족행위의 근거자료가 없어 더 이상 거론치 않기로 가결되었다. 그런데 9월14일 오후 7시30분경 경부선 내판역에서 기관차고장으로 정차하여 수리중인 부산발 서울행 조선해방자호(제2열차) 의 후부를 목포발 서울행 서부해방자호(제32열차)가 추돌하여 후부객차 2량이 파손되면서 미군 25명 사망, 78명 부상 및 한국인 1명 사망, 2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대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9월21일 속개된 국회 제71차 본회의에서는 사고의 최고 책임자인 교통부장관이 아직까지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니 소청하여 책임을 추궁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고, 22일 출석한 민희식장관은 국회의 책임추궁에 대하여 양심과 성의로 민족에 지성을 다하였으나 엄청난 사고가 발생한 사실에 대하여 국민과 국회에 깊이 사죄하며 사고수습이 끝나는 대로 마음속에 작정한 태도를 명확히 하겠다는 답변에 ‘사건 처리 후 태도 표명이라 사표제출을 뜻하는 것이냐?’는 질의와 함께 ‘민주주의 하에서는 자기책임을 완수치 못 할 때는 책임을 져야 된다’는 통렬한 공박이 이어졌다는 내용이 23일자 자유신문에 보도되었다.  

 

조사결과 당시 남북 대결로 인한 정치·사상적으로 불안한 사회현실 속에서 조선해방자호의 후부 객차에 미군이 승차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남로당 동조자인 부강역장과 승무원 10여명이 9월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수원소재 모 여관에 모여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후,  당일 조선해방자호기관사는 통과해야 할 내판역에 기관차 고장이라는 구실로 정차하고, 바로 뛰 따라 내판역을 통과하는 서부해방자호가 조선해방자호가 정차해 있는 선로로 진입하도록 선로전환기를 조작하여 추돌케 한 고의적인 사고였음이 밝혀졌다.

 

9월30일자 동아일보에 주모자는 채 모 부강역장과 철도노조 모 당원이며, 모 당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사실도 확인되었고,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미군사령관 John B. Coulter소장에게 위문의 조사를 전달했으며, Coulter소장은 대통령의 조의에 감사의 회신을 하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내판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민희식장관은 10월 4일 Los Angeles 초대 총영사로 인사발령이 났으며, 같은 날 후임으로 허 정씨가 제2대 교통부장관으로 임명되어, 초대 교통부장관이 50일 만에 교체된 사유는 경부선 내판역 열차 추돌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했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61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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