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54화’

매일건설신문 | 기사입력 2020/10/26 [09:12]

[기획칼럼]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 ‘제54화’

매일건설신문 | 입력 : 2020/10/26 [09:12]

▲ 안성역                © 매일건설신문

 

1921년 1월말 군산방면 충남선(장항선)과 장호원방면 경기선 철도부설을 위한 측량이 허가되자 안성에서는 경남철도안성선속성동맹회를 조직하고 속성운동을 펼쳤지만 충남선이 먼저 착공되었으며, 천안~안성 간 철도부설공사에  직산면 유지 100여명은 1923년12월 철도노선의 직산면 경유와 직산역 설치를 요구하였고(1923.12.13.동아일보),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에 따른 자금경색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어 1924년12월11일에야 기공식과 함께 공사가 시작되었다.(1924.12.17.동아일보) 

 

이후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1925년 9월 3일자로 안성~여주 간 철도 부설면허를 추가로 받은 후 1925년11월 1일 천안~석교~직산~고지~미양~안성 간 28.4㎞가 준공되어 안성역구내에서 축하행사와 함께 하루 3왕복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였으며, 1927년 4월16일 안성~안성읍내~마전~삼죽~용월~죽산 간 18.6㎞ 개통에 이어 1927년 9월15일 죽산~죽산읍내~매산~주천~행죽~대서~장호원 간 22.8㎞가 개통됨에 따라 천안~장호원 간 69.8㎞가 개통되었지만 장호원~여주 간은 부설되지 못하였다. 

 

경기선 노선 중 직산(稷山)역의 경우 1923년 직산면민의 요구에 따라 노선 중 직산면에 가까운 곳에 역을 설치하고 직산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나 1935년12월 1일 경부선 천안역과 성환역 사이 직산면내에 직산역이 설치됨에 따라 경기선의 직산역은 입장면 지역명을  따라 입장(笠場)역으로 변경하였으며, 입장면에는 1919년 영국인이 개발한 금광(중앙광산)이 있어, 이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논에서도 금을 채취할 정도여서 물동량이 많은 주요 역이 되었다. 안성선 이야기를 쓰려니 필자가 열차승무원시절 당시 입장역장님께서 입장역과 역장관사 아래 땅속에 금이 숨겨져 있다며, 안성선이 폐지되면 입장역과 관사를 불하받아 금을 캐내겠다고 벼르시던 선배님의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 경기선시각표                  © 매일건설신문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1944년 운행 중인 철도노선 중 전쟁에 필수적이지 않은 선로를 철거하여 긴급한 노선의 증설과 보수에 사용하려는 극비계획에 안성~장호원 간의 선로가 포함되어 1944년12월 1일 안성읍내~장호원 간 41.4㎞의 선로가 철거되었으며, 1946년 5월17일 사설철도 국유화에 따라 국유철도에 편입된 후 1946년 8월부터는 기동차가 운행을 시작하였고, 1955년 6월 1일 6.25전쟁으로 UN군에서 장악했던 철도운영권을 인수한 교통부는 6월14일 경기선 선로명칭을 안성선으로 변경하였다.

 

1960년대 후반 필자가 열차승무원으로 근무 시 안성선 통근열차를 승무하면 천안~입장 간  고개를 열차(동차)가 올라가지를 못하고 정지하면 타고 있던 통학생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없이 내려가 기차를 함께 밀어 비탈 정상까지 올려놓은 후 승차하고, 열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운행을 계속했던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진풍경이었으며, 안성선은 1985년 4월부터 여객열차운행이 중단된 후 1989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는 ‘제55화’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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