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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기획칼럼]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33話」
왜? 경성역(京城驛)이라 했을까?
매일건설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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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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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철도박물관 철도문화해설사 워크숍 참석자가 「고종은 을미사변 때 민비가 살해당해 경인철도를 죽을 때까지 타지 않을 정도로 한이 맺혀있는데 당시 한성부가 존재했음에도 왜 한성역이 아닌 일본 동경의 위성도시 경성이라는 명칭을 썼는지?」라는 철도 역사를 연구한다는 필자로서도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못한 뜻밖의 질문을 한 것을 알았다. 필자가 받은 질문은 아니었지만 꼭 짚어보고 싶은 내용이었기에 나름대로 관련 내용을 정리해본다.

 

고종시대사 제3집에 의하면 경인철도는 1892년 4월12일(음력) 고종황제가 미국인 James R. Morse를 초청하여 경부(京釜)간 철도부설 협의를 하였으나 일부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자 Morse는 한∙미 간 왕래 여비와 출장 중 폐업에 대한 손해 등 배상금 10,000원(당시 쌀 80㎏ 2,500가마 상당 대금)을 요구하였고, 고종은 을미사변으로 러시아 공사관 피신(아관파천) 중 경부선 대신 경인선 부설을 허가한 것이었다.

 

그리고 경인철도회사에서 주문 제작한 임금전용 철도객차(御車)가 1900년 9월30일 반입 되었으며, 1905년 9월19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딸 Alice Lee Roosevelt양이 방한 차 인천에 도착했을 때 고종은 임금전용 어차를 내주어 이용케 한 사실로 보아 죽을 때 까지 타지 않았다는 것은 경인철도를 탔다는 기록이 없으니 사람들이 추정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된다.

 

1846년 완성된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覺)에 의하면 ‘경성(京城)은 태조5년(1396년) 돌로 쌓았고, 세종4년(1422년) 고쳐 수리한 성채 8문 중 정남 숭례(남대문), 정북 숙청(후에 숙정문으로 변경된 북대문), 정동 흥인(동대문), 정서 돈의(서대문)이며, 간방마다 소문(小門)이 있었다.’하여 「경성」은 1396년부터 사용된 서울의 4대문을 가리키는 용어로 ‘동경 위성도시’의 뜻은 아니고, 예부터 있던 우리의 고유명사임을 알 수 있다.

▲ 경인노선계획도  © 매일건설신문

 

경인철도 부설당시 노선계획도의 모든 역명은 지역명칭을 인용했지만 ‘경성’은 지역명칭이 아니며, 영문은 Seoul이다.

 

필자는 서울의 어원을 찾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서라벌’이 변형된 것이라 하지만 지리상으로 서라벌은 경주의 옛 이름으로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당시 황성신문은 1900년11월 경인철도 개업식 기사에서 ‘경성정거장’이 아닌 ‘신문외(新門外)정거장’이라 표현하여 당시 ‘경성역’은 통상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의 서대문인 돈의문은 풍수지리설로 1414년 헐고 다시 축조하여 ‘서전문’이라 한 후 1422년 다시 헐고 새로 돈의문을 축조하여, 새문 또는 신문(新門)이라 하였으며, ‘신문외역’ 즉 ‘새문 밖 정거장’이 많이 사용됨에 따라 1905년 3월27일 ‘서대문역’으로 개칭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영문표기는 변함없이 Seoul Station이다.

 

당시 서울시의 공식명칭은 한성부(漢城府)였으나 한일강제병합 후 1910년 9월30일 경성부(京城府)로 변경되었고, 1919년 3월말 서대문역이 폐지된 후 한국철도를 위탁 운영하던 남만주철도(주)는 1922년 6월 남대문역사 신축공사를 시작한 후 1923년 남대문역을 경성역으로 변경하였으며, 해방 후 1947년11월 1일 서울역으로 변경하였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당시 한성부에는 영등포, 노량진, 용산, 남대문 등 5개역이 있어, 어느 한 역을 한성으로 하기 보다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경성을 택한 것이라 추정된다.

 

▲ 철도교통문화협회 손길신 명예회장(前코레일 철도박물관장)     ©매일건설신문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34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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