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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제20話」
반일의식을 고양시켰던 경원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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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14 [09:5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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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의식을 고양시켰던 경원철도-

 

1909.07.08일자 경원선 부설관련 통감부문서에 의하면 한국거주 일본인 경성거류민 단장(態谷賴太郞) 등이 ‘경원철도 기성동맹회’를 조직하고 기부금을 갹출하며 본국에 보고했다는 기록은 경성, 용산, 인천 거류민들이 경원선(경성~원산) 아닌 평원선(평양~원산)이 부설되면 불이익을 당할 것을 차단하기 위한 우회 활동으로 판단되며, 당시 일본 군부는 경원선 부설을 우선 시 했지만 통감부 철도원은 호남선 부설을 우선 시 하고 있었다.

 

경원철도는 일본이 정치·군사적 필요뿐만 아니라 북부지방 물자를 중부지역으로 반출 할 목적의 노선으로 1910년10월 부설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일제의 경원선 부설은 한국인들의 반일의식을 고양시켜 의병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한일합방으로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들을 주력으로 하는 의병대는 경원선이 통과하는 삼방관, 철원 등지에 집결하여 철도공사에 참여한 일본인들을 공격하였고, 이에 무장 헌병들의 호위를 받는 일본인들은 한국인으로 보여 의병 공격을 피하기 위해 흰옷을 입고 작업을 하는 형편이었다.

▲ 삼방천 15호교량     © 매일건설신문


특히 용산~의정부와 고산~원산 구간 외는 길은 없고 가파른 산과 계곡이 깊었으며, 하천은 다리가 없어 비가 오거나 겨울철에는 우마차를 이용할 수 없어 자재운반에 어려움을 겪었고, 철원 이북 깊은 계곡의 검불랑 터널공사에 사용할 벽돌 운반을 위해서는 세포~삼방을 거쳐 고산에 이르는 약 32㎞ 구간에는 수압식 경편선로를 5개월에 걸쳐 부설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하절기에는 홍수가 심해 1912년의 경우 7월 중순부터 내린 비는 선로위로 약 1m까지 물에 잠겨 교량과 선로의 유실사고가 속출했으며, 겨울철에는 혹한과 결빙으로 세포부근에서는 약 5개월에 걸쳐 공사를 중지하기도 하였다.

▲ 경원선 약도     © 매일건설신문


1911년 9월 용산~독도(纛島 : 1914.04.11일 왕십리역으로 변경)~청량리~창동~의정부 간 31.2㎞가 완공되어 10월15일부터 영업이 개시된 것을 시작으로 1914년 8월16일 세포~고산 간 개통까지 총 1,218만9천원을 투입하여 용산~독도(왕십리)~청량리~창동~의정부~덕정~동두천~전곡~연천~대광리~철원~월정리~평강~복계~검불랑~세포~삼방~고산~용지원~석왕사~남산~안변~갈마~원산 간 222.7㎞의 전구간이 개통되었으며(1914.08.08일 조선총독부관보 제606호), 1914년 9월16일 원산에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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