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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제6話>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대한제국 황제폐하께 감사드리며 일본거류민 6천여 명의 영광 …”
문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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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2 [15:1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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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註):본지는 철도가 지닌 특별한 역사(歷史)성 즉 이 나라가 구한말 겪은 격변의 시대를 단순히 교통 운송 수단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숨결 같은 존재이기에, 또 철도史가 잘못 알려진 보편적 오류들이 한국사 안에서도 많아, 철도교통문화협회 명예회장인 손길신 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을 통해 바로잡고자 연속해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 철도교통문화협회 손길신 명예회장(前 코레일 철도박물관장)     ©매일건설신문

경부철도 착공도 하기 전 선로궤간과 남대문역 부지 문제가 대두되었다. 대한제국 국내철도규칙으로 표준궤간(1,435㎜)이 채택 되었음에도 공사비 절감과 신속부설 및 일본자재 사용 등 이유로 철도작업국은 1m궤간, 60lb(파운드)레일, 군부는 일본과 같은 1,067㎜궤간과 50lb 레일을 주장하였으나 대륙진출을 위해 중국철도와 같은 표준궤간을 채택하고, 80lb 중국레일을 감안하여 75lb(37kg/m)레일을 사용키로 하였다.

 

계약조항 중 ‘철도부지는 한국정부가 무상제공 한다’는 조문은 일제의 치밀한 계략으로 남대문역 11만평, 영등포역 6만평, 초량역 16만평, 부산진역 21만평 등 내륙지방 각역 부지를 터무니없이 요구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켰다(1901년 5월14일자 황성신문에 의하면 1901년 4월30일 하야시공사는 남대문․부산역 부지는 공사 중 또는 준공 후 방대한 토지 소요가 예상되어 매매금지를 요청하였다).

 

이에 철도원 박용화감독은 자신이 일본공사관에 근무 시 이용했던 일본철도의 역들은 3만평 미만이었다며 방대한 토지 요구의 부당함을 지적하였으며, 당시 정부는 46,000원에 달하는 경인철도부지 대금도 지불하지 못한 형편에 이 요구를 수용할 능력이 없었다.

▲ 경부철도 북부 기공식장 앞에 정차한 경인선열차     ©매일건설신문

 

철도부지 문제로 민심과 여론이 나빠지자 하야시(林權助)공사는 부지문제를 미루고 착공을 먼저 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일본의 공작으로 매판관료로 변신한 사람들이 사장으로 있는 대한의 토목건축청부회사들을 공사에 끌어들였다.  

 

1901년 8월20일엔 영등포역 부지 언덕위에 식장을 가설하고 한일 양국 저명인사 300여명과 수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각부 대신, 철도원총재와 감독, 청・일・영・미・러・독일 등 각국 공사와 영사 등 내외귀빈이 입장하자 폭죽을 터뜨리며 개회가 선언된 경부철도 북부 기공식에서는 “한일양국 황제폐하 만세!”, “경부철도 만세!” 제창과 한일 양국 연예인의 가무연예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어 모인 구경꾼이 수 만 명에 달했다 한다.

 

경부철도북부기공식 한 달 후인 9월21일 초량에서 궁내부대신(이재완), 철도원총재(심상훈), 청․일․영․미․독일 영사 등 내외귀빈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남부기공식에서는 노세(能勢辰五郞) 부산주재 일본총영사가 축사에서 “대한제국 황제폐하께 깊이 감사드리며, 이는 경부철도의 영광 뿐 아니라 부산항 일본 거류민 6,000여명의 영광이다"고 말했다.

 

또 "대한제국 국민의 호의로 오늘의 영광이 있게 되었다”면서 대한제국 황제폐하의 만능을 제창함으로서 "만수무강을 빌고자 한다“며 “대한제국 황제폐하 만능 만능 만만능!”을 외쳐대기도 하였다.

 

▲ 노세 부산총영사   ©매일건설신문

철도부지 문제는 1902년 7월 「남대문외 경부철도 정거장 부설지 협정서」를 체결하여 남대문역 51,819평, 영등포역 41,000여평, 초량역 50,000여평, 부산진 30,000여평 기타 각 역 30,000여평으로 합의 하였으며 북부 영등포~군포간은 9월, 초량~구포간은 10월에 착공하였다.

 

공사자재 레일과 거더(girder)는 미국에서 수입하였고, 침목 등 목재는 일본 홋카이도산을 사용하였는데 당시 노일전쟁 중으로 1904년 7월 1일 홋카이도에서 침목을 싣고 부산으로 항해하던 영국선박이 러시아함대에 나포되고, 같은 해 7월24일 미국에서 레일과 거더를 싣고 한국으로 항해 중이던 영국선박이 러시아함대에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한국 내 자재 수송은 북부는 인천항에서 경인철도를 이용하였고, 공사에 따라 군산항에서 금강을 경유하여 우마차로 수송하였으며, 남부는 부산과 낙동강에서 삼랑진을 경유하여 우마차로 현장까지 수송하였다.

 

 

☞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7話」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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